내가 조교로 근무하는 행정실에는 사방형 가습기가 있다. 어느 날 동서남북으로 거세게 수증기를 뿜고 있는 그 가습기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더 높은 곳에서 수증기를 퍼뜨리겠다고 수직으로 높게 꽂힌 분출구, 어떻게든 널리 퍼뜨리겠다는 일념 하에 디자인된 사방형 가습노즐, 구멍에서 계속 밀려나오는 수증기, 그리고 슬그머니 퍼져나가는 수증기 연기가 우악스럽게 느껴졌다. 행정실 공간을 쾌적하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그리고 알게 모르게 기능이 작동해 꽤 쾌적 해진 실내가 불쾌했다. 어쩌면 그 날의 일하기 싫은 마음이 눈 앞의 모든 것을 짜증나게 만든 거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가습기’라는 대상이 준 감정은 한동안 기억에 남았다.
가습기는 나에게 낯선 도구였다. 돌이켜보니 한번도 집이나 작업실에서 가습기를 쓴 적이 없었다. 집에서는 늘 빨래를 널어놓거나 식물을 키우다보면 적당히 쾌적했다. 어렸을 때 종종 건조한 공기때문에 코피를 흘렸지만, 부모님은 그저 콧구멍을 휴지로 막아줬을 뿐 환경을 바꿔줄 생각은 하지 않으셨다. 작년에 사용하던 작업실도 반지하였던 관계로 가습기는커녕, 오히려 제습기를 돌려야하는 습한 공간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습기는 나에게 사용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도구였다. 나에게 ‘가습기’란 다른 해결 방안이 충분히 있으나 굳이 사용하는, 안하던 염려를 괜히 불러일으켜 소비하게 하는 불필요한 대상이었다. 건조하고 답답한 실내공기를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각종 가습기의 광고 문구들이 마치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 말하며 학부모들의 불안을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사교육 업체들의 상술처럼 느껴졌다.
가습기라는 존재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다. 적당히 사용했을 때는 실내를 촉촉하게 만들어 득이 될 수 있지만, 적량 이상으로 사용했을 때는 공기를 축축하게 만들고 불쾌를 자아낸다. 과한 습기는 곰팡이와 결로를 번식시키는, 결국은 집값을 떨어뜨리는 원인을 제공하는, 치명적 상해를 입히고 만다. 그리고 스스로 분무량을 조절하는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가습기는 습도100%를 향해 달려간다. 습도를 올리는 방향으로만 달려갈 뿐이다. 또한 ‘습도’라는 것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치명적으로 작동하는,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는 습도를 매순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변화를 감지하게 되는,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르는 체 영향을 끼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번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하는, ‘가습기를 응원하는 행위’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가습기를 응원하는 행위가 가속주의적 태도와 닮아있다 생각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를 넘도록 가속하자는 이 가속주의 이론처럼, 가습기를 더욱 가속 가동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가속화하는 방식을 가시화하고자 한다. 가속주의의 목표가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용해시키는 것인 것처럼, 이 가습기를 응원하는 행위도 결국은 가습기의 허점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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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도구는 삶을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안되었다. 점점 더 진보하는 도구들은 혁신을 거듭하며 생활의 급속한 변화를 이끌어 나갔고, 현재의 도구들은 발전하다 못해 인간을 압도하고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을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마비되어 기술에 기생하 는 존재로 느낀다. 재작년 kt 아현지사의 화재로 마포구 일대의 통신 서비스가 마비되었을 때, 어떠한 일상도 진 행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경험은 나의 의존도를 더욱 일깨워주었다. 최근 기사로 접한 스마트톨링 시스템의 국내도입은 발전하는 고속도로 시스템에 대한 놀라움과 동시에 그에 따라 일자리를 잃을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처 지에 감정을 이입하게 하였다. 본인은 기술 발달로부터 오는 무력함을 해결하기 위해 2018년 <기계농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계농락 프로젝트는 나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기계들을 농락하고 괴롭히는 일종의 러다이트 운동이었다. 기계를 괴롭히며 스스로의 우월성을 확인하고자 하나 그 행위는 괴롭힘을 받는 대상이 감정이 없는 기계이기에, 가히 헛 수고적인, 또다시 무력감을 재생산하는 행위였다.
이번 소액다컴을 통해 진행하고자 하는 <기계응원 프로젝트>는 기계를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그 기계를 응원하 며 기계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해주는 방향을 택한다. 이는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인 사용을 더 극대화 시키는 촉진주의(가속주의)적 행동이다.
가습기는 수증기를 내어 겨울철 건조한 실내 습도를 적정 습도로 유지시키는 전기 기구이다. 주로 겨울철 난방기구 사용으로 건조해진 실내 습도를 올리기 위해 사용된다. 가습기는 각종 기관지, 피부 질환 및 바이러스를 예방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정 및 일터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건 강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정 습도 이상 올라가면 세균이나 곰팡이가 증식하여 질병을 초래하며 실내 공간 에 결로를 만들기도 한다. 결로는 집값을 하락하게 하는 치명적 원인이다. 그런데 사실 가습기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도를 올릴 수있는 방법은 많다. 어항또는 젖은수건을 공간에 널어두거나 샤워, 또는 창문을 열어 환를 하는 방식만으로도 습도는 충분히 오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더 빠르고 쉽게 습도를 올리기 위해 가습기를 사용한다. 근래 출시되는 가습기들에 관해 조사해본 결과, 가습기는 습도를 높이는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 다. 무드를 조성하는 LED 조명, 디퓨저, 보조배터리, 타이머, 외관 디자인을 통한 심미적 효과 등의 기능을 갖춘 가습기 모델들이 많았다. 소비자의 구매후기를 살펴보니 특히 무드 조성과 디자인, 청소하기에 간편한 구조는 보 습력과 비등하게 구매 결정에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이었다. 그 중 구매경쟁력을 지닌 몇 가습기들을 선정한 뒤, 그들이 가진 주요 기능을 1.힐링을 위한 무드 조성 2.넓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분사력 3.인테리어 효과 4.휴대 및 청소 간편성으로 추렸다. 각 가습기가 지닌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극대화시키거나, 또는 가진 효율의 발 휘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보완해주는 보조 장치를 만들어주는 방법을 통해 가습기 최선의 편리와 효율을 촉진시키고자 한다.